2009년 9월 20일 일요일

내맘속의 지옥

오늘 무겁게 들고 온 서류가방에서 내일 가져가지 않아도 되는 뭉치들을 다 꺼내서 분류하고 정리해 놓고, 많이 헐거워진 논문 뭉치들 사이에 들어있는 카톨릭 다이제스트를 그냥 생각없이 꺼냈다.

활자만 본 눈을 좀 달래주고 싶기도 하고 해서 책장을 후루룩 넘기다가 글 하나가 눈에 들어와서 읽기 시작했는데, 그러고는 한참을 읽고 있었다.

그러다가 '지상강론'에 어느 나이드신 신부님이 쓰신 글을 읽고 그냥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 되어 버렸다.
20년 전 무척이나 맘을 상하게 했던 한 사건을 떠올리면서 쓰신 글...

난, 내맘을 무척이나 상하게 만들고, 아직도 틈나는 대로 같은 방법으로 여러사람의 마음을 긁고 다니는 '그 사람'을 예쁘게 볼 수가 없다고, 아니, 용서나 했는지 확신이 안생긴다고... 그 사람이 생각날 때마다 불쾌한 생각을 떨쳐버리듯이 주모경이나 외우는.... 이정도에 부르르 떨고 사는 나는 뭐 그나마 행복한 사람이구나... 싶었다.

그 다음장에는 어느 젊으신 신부님이, 성녀 파우스티나가 체험한 지옥에 대한 글을 소개해 주셨다.

"오늘 한 천사의 안내를 받아 지옥으로 내려갔다. 얼마나 무섭도록 광활하고 넓은지!

지옥을 이루는 첫째 고문은 하느님의 상실,
둘째는 영원한 양심의 가책,
셋째는 조건의 불변이다.
넷째는 영혼은 파괴시키지 않은 채 파고드는 영신적 불길인데 무서운 고통이다.
다섯째는 암흑과 질식할 듯한 냄새, 더구나 악마와 저주받은 영혼들이 서로 마주보아야 한다.
여섯째는 사탄으로부터의 끊임없는 시달림,
일곱째는 절망감, 증오, 천한 말, 저주와 모독이 난무하는 현장이다.

지옥의 영혼들이 겪는 고통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각 영혼마다 지은 죄에 따라 무섭고도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한다. 만일 전능하신 하느님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그 광경을 보고 까무러쳤을 것이다.

아무도 '지옥이 어디 있느냐, 본 사람이라도 있는냐?'는 말을 못하도록 하느님의 명에 의해 기록한다. 이것은 내가 본 단편에 지나지 않으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옥에 있는 영혼들은 대부분 지옥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지옥...
요즈음 내 마음안에도 있는것 같다.

요즘들어 왜 이리 짜증이 많아졌는지...
엄마가 화낼 때 딸아이가 가장 속상해 하는걸 알면서도 딸아이에게 화내는 일도 많아졌다.

영화 'Chorus Line'에서 캐시가 부르던 노래처럼 가슴뛰게하는 흥분과 함께하던 매일 아침 출근 길이,
'오늘도 일이 맘먹은것 처럼 안풀리면 어쩌지...
그 일이 아직 안돼 있으면 어쩌지...
이일로 저일이 자꾸 지장받으면 어쩌지...
이렇게 시간만 가고 끝내 실적 안나오면 그때는 어떻게 할까? 부드득.. 부드득...' 하는 생각으로 그리 즐겁지 않기 시작한지 오래인것 같다.

내가 계속 공부하는 이유가 무엇이지?
먼 길을 통근하며 직장생활 하는 이유가 무엇이지?
출세하고 성공하고 돈 잘 벌기 위한 것이 아니었잖아. 선물처럼 주어졌기 때문이잖아.
힘들어도 참고 지낼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하고 계신다는 기쁨 때문이었잖아...

참... 나... 언제 또 이렇게 됐지?
그야말로 지옥의 첫번째 고문을 받고 있구나.

뱃속에서 귀엽게 자라고 있는 아기 때문에도 더더욱 하느님과 가까이 해야 하는데, 마지막으로 성찰을 한 것인 언제인지... 성경을 읽으면서 하느님의 마음을 읽어보려고 노력한 것이 언제인지... 영적 독서는 언제부터 안하기 시작했는지...

내 마음속에서 자꾸 커지고 있는 지옥의 첫단계와 같은 이 느낌은 하느님을 적극적으로 내 삶 안으로 모셔오려고 노력하지 않은 내 탓이라는걸 다시 깨달았다.

사소하게 마음 거스르는 사람을 '그러려니...' 하고 넘기지 못하고 마음속에서 자꾸 미운 모습으로 새겨놓는건 자기파괴적인 습성이 아니고 무엇이냐...

'하느님 사랑 안에 충만하지 못함' 만으로도 이렇게 맘이 불편하기 이를 데가 없는데, 이보다 더한 상황을 어떻게 참으리...

이제 그만!

다시 한번, 엉망이 된 내 '삶'이라는 게임기의 파워를 새로 켜고 "나 다시 시작할래!!!"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