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27일 일요일

William Walton - viola concer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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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6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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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카페 > 비올라와 비올리스트 | 곰발바닥
원문 http://cafe.naver.com/violist/574

 

William Walton Viola Concerto

Maxim Vengerov viola

Mstislav Rostropovich  Conductor

London Symphony Orchestra

 

Instrumentation : Viola solo, 2 flutes (second doublng piccolo), oboe, cor anglais, 2 clarinets

(second doubling bass clarinet), 2 bassoons, 4 horns, 2 trumpets, 3 trombones timpani harp strings 꽤나 큰 편성.

 

I. Andante Comodo 

 

II. Vivo Con Moto Preciso 

 

III. Allegro Moderato  

 

 

누군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는 비올리스트라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유명 바이올리니스트들이 비올라에 도전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빈번하다. 누구나 알고 있는 파가니니서부터 핀커스 주커만, 그리고 이를 이은 벵게로프까지. 하지만 비올라 특유의 음색을 제대로 살기는 힘든 법. 그런건지 방게로프가 녹음한 이 음반은 테크닉적으로는 뛰어나긴 하지만 비올라의 음색을 내진 못했다는 평을 많이 듣는거 같다.

 

얼마전에 이 곡을 초연했었던 London Philharmonic Orchestra이 내한하여 리처드 용재 오닐과 협연하는것을 보러 갔었는데,

Mikhail Jurowski와 함께 놀랄 정도로 열정적인 공연을 보여 준 용재 오늘의 모습이 떠오른다. 비올라를 목에 본드로 붙여놓지 않는 이상 그렇게 움직이기 힘들텐데...

 

암튼 지금까지 벵게로프, 이마이 그리고 바쉬메트의 연주를 들어 봤지만,  벵게로프의 왈튼 협주곡을 나쁘게 생각하진 않는다 :) 오히려 숨막히는 프레이징이 맘에 든다는!

 

 왈튼은 마이클 티펫, 벤저민 브리튼과 함께 엘가 이후로 음악계를 이끌어 온 영국의 3대 현대 작곡가 중 한명이다. 1902년 랭카셔의 올덤에서 태어난 월튼은 교회의 오르간 주자를 맡고 있던 아버지와 아마추어 성악가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912년 그는 옥스퍼트 대학 내 크라이스트 교회의 수습성가대원으로 입학하여 1912년부터 1917년까지 6년간 재적했는데, 그 이후 12세가 되던 해인 1914년에 작곡에 손을 댄 월튼은 1918년 시트웰 남매와의 운명적인 만남을 겪게 된다. 이들은 조지 시트웰 경의 자제들로서 막내인 사셰베럴은 오빠 오스버트에게도 월튼을 소개, 월튼은 이들의 후원을 받으며 기존의 속물주의와 권위주의적인 풍토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들과 교류하면서 세련된 문학적 분위기를 마음껏 몸에 익힌 월튼은 영국 음악계의 돌풍으로 등장한 것은 1921년 11월, 19세 때부터 쓰기 시작한 '파사드'란 작품을 발표하면서 부터이다. ('파사드'는 이디스 시트웰의 실험석인 시에 곡을 붙인 것으로 페르시아 같은 독특한 이국정서를 담고 있다) 1928년부터 다음 해에 걸쳐 아말피에서 작곡한 비올라 협주곡에서 그는 기법의 원숙과 그의 독자적인 서정적 경향을 충분히 꽃피우게 된다. 이 비올라 협주곡은 아직 30세가 되진 전에 영국 음악의 거물으로서 월튼의 지위를 확립시키고, '파사드'를 둘러싼  그동안 월튼에게 정당한 평가를 내리기를 거부했던 여러 파벌들을 잠재웠다.

 

 이 비올라 협주곡이 이 같은 높은 평가를 받게 된 것은 그 기법의 원숙성과 독자적인 서정성이 명곡의 대열에 오르기에 손색이 없기 때문이었다.

 

 원래 이 곡은 명 비올리스트인 라이오넬 터티스를 위하여 작곡 되었지만, 그는 '너무 현대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초연을 거부했다. 그래서 나중에 이 곡은 명 비올리스트이자 실용음악의 선구자였던 힌데이트에 의해서 초연되게 된다. 하지만 나중에는 이 곡의 위대함을 한 터티스가 월튼에게 잘못을 시인하고, 나중에는 주요 레파토리로 삼아 즐겨 연주했다고 한다.

 

 월튼의 비올라 협주곡은 그의 음악 구조를 형성하는 두 가지 요소를 잘 보여준다. 그 하나는 변칙적이며 날카로운 리듬의 스케르찬도풍의 경향이며, 또 하나는 '시니컬한 우울'이 담긴 풍부한 선율이다.

 

 음악학자인 도널드 비트 경은 월튼의 비올라 협주곡에 대해 '이러한 곡을 작곡해 낼 수 있는 음유시인이 앞으로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하게 될지 그 한계에 대해 알 수 없다' 라고 하면서 '현대가 낳은 모든 협주곡 중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고 극찬했다.

 

 

제 블로그에 썼던 글을 그대로 올립니다 '-'

 

비올리스트 카페에서 퍼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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