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엠마오에서 들은 정광호 도미니꼬 신부님의 강론 중 삶과 게임기를 비교해서 말씀하신 내용을 가끔식 생각하게 된다.
어떤 꼬마가 게임기를 갖고 놀고 있었는데, 그 게임에서는 실수로 player가 죽더라도 세번은 다시 살아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꼬마는 높은 score를 내기 위해서, 첫번째, 두 번째 player가 자기가 생각했던 것 보다 더 빨리 죽었을 때 그냥 게임기의 파워를 껐다가 다시 켜고는 다시 몰두해서 최선을 다해 게임을 하더란다.
그걸 보고 신부님은 '아~ 그렇구나.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저렇게 하면 되겠구나.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면 되겠구나. 지금까지 잘못한 것 다 날려 버리고 다시 새 마음가짐으로 시작하면 되겠구나~' 라고 생각하셨다고 했다.
그 강론을 듣고 몇 주 후에 이찬일 안드레아 신부님의 주일 강론에서 비슷한 맥락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유명한 골퍼가 한 말이었는데, 스스로에게 "나는 여섯번의 잘못된 퍼팅을 할 수 있다." 라고 말하면서 자신을 encourage 한다는 내용이었다. 또한, 같은 의미로 다른 사람의 잘못된 퍼팅을 그냥 너그럽게 넘겨주라는 말씀이셨다.
‘내가 스스로 용서하지 못하는 내 실수들을 ‘잘못된 퍼팅’ 이라고 생각하고, 그 잘못된 퍼팅을 생각보다 빨리 혹은 자주 저질렀을 때 내 ‘삶’이라는 게임기의 파워를 껐다가 다시 켠 기분으로 새로 시작하자…’ 라고 생각했었다.
미국에서의 일을 마치고 귀국한 지금, 자의 반 타의 반… 또는 상황에 의해…
다시 한번 "삶" 이라는 게임기의 파워를 껐다가 켠 느낌이다.
모든걸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고, 그 동안 쌓아둔 보너스도 다 날려보냈다.
이제는 억울하고 속상할 때 마음 맞춰주는 손발이 척척 맞는 실험실 동료도 없고, 내 손에 맞는 실험기구도 없다. 책상과 의자 높이도 내 앉은키와 안 맞는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이다.
이제는 더 이상 레지오 전임단장도 아니고 성령기도회 총무도, 성령봉사자도 아니다.
성당에 갔을 때 ‘우리 아녜스~’ 하며 허그해 주시는 분도 없다.
(결혼하고 나서 교적을 옮겨놓고는 정작 주말엔 친정 근처 새로 지은 성당으로 다녔었기에 우리 성당에 아는 분도 별로 없다.)
이제 성당에갔을때의 나는 그냥 하느님을 찬미하고 싶은 한 영혼일 뿐이다.
그런데 게임을 다시 시작하는 지금 이 마음은 3년 전의 마음과 똑같지는 않다.
아마도 이번에 시작하는 게임은 조금 양상이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아마도 이번에는 부족한 나를 성장시키시고자 하느님께서 다른 양상으로 배움의 기회를 주실 것 같다는…
그 동안 은사와 말씀으로 가르쳐 주신 사랑을 이제는 말로가 아니라, 삶으로 살아내라고… 하느님께서 내 손을 붙잡고 함께 인도해 가시니 허락하시는 것만을 구하며 하느님께 온전히 의지하고 맡기라는 나 자신에 대한 예언을 조심스럽게 해본다.
십년도 더 전에 남동생이 msn messenger에 달아놓았던 구절이다.
"Name of the Game is 'Life'... Only God's Love and Encouragement will lead me thr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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